우크라이나 전쟁/협상 Negotiation

최후통첩에 대한 갈란드 닉슨의 해석

진재일 2025. 5. 12. 13:18

1. 포스트 취지

갈란드 닉슨은 FOX News, NPR 등에 패널로 출연했던 진보적인 외교정책해설가이고 현재는 개인 podcast를 하고 있다. 필자는 이분의 유튜브 등의 토론을 자주 시청하는 편인데, 보통은 게스트 중심으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관점을 방송하기도 한다. 이번에 젤렌스키와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의 수장들이 날린 최후통첩과 그 이후의 반응에 대해서 자신의 관점을 방송한 내용이 통찰력을 제공하므로 독자들께서 한 번 음미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를 번역하여 정리한다. 시간이 되는 분들은 그의 방송을 직접 보실 것을 권한다.

2. 본론: 그의 방송 내용

 
 

5월 9일은 제국주의적 내러티브에 맞서는 상징적 행사

Garland Nixon은 이번 방송에서 러시아의 5월 9일 전승기념일(나치 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 지닌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함의를 심층적으로 해석하며, 서방(특히 EU 및 NATO)의 대응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고발한다. 그는 이 날이 러시아의 과거 승리뿐 아니라 현재 국제질서의 전환을 보여주는 분기점이었다고 본다.

 

전승기념일은 단지 역사적 행사로 머물지 않는다. Garland Nixon은 이 날을 서방이 부인하려는 "진실의 서사(내러티브)"라고 설명한다. 특히 EU와 NATO의 지배 엘리트는 소련이 나치 독일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려 한다. 이들은 마치 전쟁을 서방이 주도적으로 이긴 것처럼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당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

Nixon은 독일의 총 사상자 중 83%가 동부전선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소련군의 공세에 의해 초래된 결과임을 강조한다. 이 역사적 사실이 현재 러시아가 주장하는 "탈나치화(De-Nazification)"의 정당성과도 연결되며, 이러한 주장 자체가 서방에게는 불편한 진실로 작용한다. 결국 5월 9일은 서방 지배질서가 가장 두려워하는 서사적 반격인 셈이다.

 

드론 공격과 군사적 심리전을 통한 무력 시도는 실패

5월 9일 모스크바 전승기념일을 무산시키기 위한 시도로 수백 대의 드론이 모스크바에 발사되었지만, 러시아의 첨단 방공체계에 의해 모두 요격되었다. Garland Nixon은 이를 단순한 군사적 대응 이상의 의미로 본다. 이는 러시아 군사력의 체계성과 방어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서방의 전략이 군사적, 외교적, 심리적 전선에서 모두 실패했음을 드러낸 장면이다. 그는 러시아의 방공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와 유사한 S-400 시스템을 중국도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나아가 이러한 성과는 시각적으로 전승기념일 퍼레이드와 결합되면서 군사력과 정치적 정당성의 시각적 통합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푸틴 = 러시아'라는 수사를 통한 외교적 고립 전략의 붕괴는 역효과 발생

Garland Nixon은 서방이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 할 때, 언제나 사용하는 기법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국가의 의사결정 주체를 '개인'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러시아는 '푸틴', 시리아는 '아사드',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중국은 '중국 공산당'으로 단일화되며, 이들은 모두 '악의적 인물'로 프레이밍된다. 

이러한 서사는 개인화(personalization)를 통해 대상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번 5월 9일에는 다양한 국제 지도자들—특히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도자들—이 푸틴과 함께하며, 러시아와의 외교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전 세계가 목격했다. 이는 서방의 고립 전략이 사실상 무력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말리의 대통령 이브라힘 트라오레의 참석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군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식민주의에 대한 실질적 저항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그는 프랑스와의 투쟁에서 살아남은 아프리카 전통의 계승자이며, 이번 행사에서 그가 푸틴과 함께 있다는 것은 러시아가 제3세계와의 연대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서방의 '휴전명령'이라는 이름의 일방적 강요의 외교 시도

Garland Nixon은 EU 및 NATO가 러시아에 제안한 30일간의 '휴전명령'(ceasefire)은 실제로는 조건부 항복 요구라고 본다. 이 휴저명령은 러시아의 군사활동을 일방적으로 제한하면서, 우크라이나 측에는 무기 재보급, 병력 재조정, NATO 군 투입 등을 허용하는 구조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궁지몰이였으며, 그 목적은 러시아를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거부를 빌미로 도널드 트럼프에게 추가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강요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Nixon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분석한다.

 

요구를 협상으로 전환시킨 러시아의 반격

러시아는 이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이를 협상의 출발점으로 전환시키는 지혜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우리는 이 요구를 제안(proposal)으로 간주하고, 다음 주 목요일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와 직접 협상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이 발표는 전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점을 지닌다. ①서방의 일방적 구조를 다자적 협상으로 전환 ②트럼프가 탈출구를 찾도록 유도 ③러시아의 외교적 합리성과 성실성을 강조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이를 환영하며, SNS에서 "수십만 생명을 구할 기회"라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낸다. 이는 서방이 짠 프레임이 붕괴되고, 오히려 러시아와 트럼프가 일정 부분 손을 잡는 듯한 형국으로 전개된다.

 

계급적 세계관과 봉건적 질서의 잔재

Nixon은 이 전체 구도를 서구 중심주의적 봉건 질서의 연장선으로 본다. 유럽과 미국은 여전히 자신들을 세계의 '귀족'으로 간주하며, 러시아와 아프리카, 아시아는 '농노', '식민지', '자원 제공자'일 뿐이라는 사고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전장과 외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은 여전히 러시아를 '열등한 존재'로 보고 명령하려 한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인종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종적 프레임의 도구화에 가깝다. 즉, 열등하다고 정의하는 것은 곧 약탈과 통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젤렌스키의 무력함, 네오나치 세력의 실질적 통제

Nixon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실질적으로 군을 통제하지 못하며, 오히려 군사적 극우 세력—즉 네오나치 민병대—에게 통제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젤렌스키가 당선 당시 내세운 평화 공약은 사실상 실행 불가능했으며, 전선에서 극우 민병대에게 "포격을 멈추라"고 요청했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보도도 존재한다고 그는 전한다. 결과적으로 젤렌스키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며, 네오나치 세력이 실질적으로 군사와 정치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 다극화 세계질서의 형성과 서방의 절망

Garland Nixon은 이 모든 흐름이 다극화(multipolar) 혹은 다중결절(multinodal) 세계질서로의 이행을 상징한다고 본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 브라질, 그리고 아프리카의 부상은 서구 중심의 일극적 질서의 해체를 뜻한다. 그는 다극적 세계가 마치 민주주의처럼 "완성된 결과가 아닌, 실현을 향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은 하나의 중심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시아 등이 균등한 주체로 성장해 다중결절 네트워크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이 과정 속에서 러시아는 단지 군사적 행위자가 아니라, 탈식민 전선에서의 외교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서방의 입장에서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3. 필자의 요약 및 평가

5월 9일 러시아 전승기념일은 단지 과거의 기념이 아닌, 현재의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Garland Nixon은 이를 통해 러시아가 어떻게 군사, 외교, 문화의 모든 전선에서 서방의 프레임을 전복하고, 트럼프에게조차 탈출구를 열어준지를 설명한다. 이는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 순간이었다.

필자는 평소에 그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게스트들에게 대화하는 내용만 주로 들어왔기에 그가 어떤 통찰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그의 생각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였다. 아마도 필자가 미국의 일반 청중들에 비해 그를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방송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많은 관점들이 필자와 유사한 것은 물론이고 이 모두를 통찰하는 능력이 필자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인 것을 단번에 알았다.

 

특히 지난 3년 간 서방을 뚫어지게 봤던 필자는 나름 서방에 대해서 일정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매우 일천함을 느꼈다. 모호함속에 숨겨져있는 것을 찾으려고 해메었던 필자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필자는 유럽인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대상으로 보는 반면, Nixon은 매우 오랫동안 겪어온 상대방으로 보는 차이라고 할까? 관중으로 상대한 것과 선수로서 상대하는 것의 차이라고 하는 비유가 더 적확할 지 모르겠다. 이런 차이가 우리나라의 외교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