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서방의 경제제재의 역효과

진재일 2025. 5. 23. 19:59

3만 건에 가까운 경제제재는 러시아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힘들게 하고 있다. 실제로 전자부품을 수입하는 것만해도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지만, 공식적으로는 중국도 제재에 동참할 수 밖에 없으므로 길고긴 중러 국경을 통해서 개별 업체들이 몰래 거래를 하는 것이다. 만약 중국 당국이 의지를 가진다면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비용이 들어간다.

2014년 크림합병 이후에 시작된 제재가 2022년 러우전을 이유로 더 강화되었으나, 러시아는 이에 적응하여 실제로 불편함을 그다지 못느끼고 있다. 오히려 경제제재가 러시아를 어렵게 한 것보다는 서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제재를 부과하면 제재를 받은 쪽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제재를 부과하는 쪽에도 손해가 있으며 감시비용도 든다. 3년 이상 제재를 하고 있으나 왜 제재가 효과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설명이 없어, 이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본다.

 

제재의 반복과 무력감

유럽은 벌써 18번째 제재 패키지를 논의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제재가 반복될수록 러시아에 미치는 영향이 무력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방 특히 유럽은 마치 "이번 제재만큼은 결정타가 될 것"이라고 계속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풍자적 묘사가 나온다. 이로써 제재가 일종의 자기위안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정책 실패에 대한 트럼프의 영향

FUGP이 젤렌스키와 함께 30일 휴전협정 최후통첩을 날렸을 때, 러시아가 들어주지 않으면 사상 최대의 경제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협박했었다. 그러나 경제제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듣기에도 이상한 주장이었다. 3년전에 3만건 가까운 제제를 할 때, 그 때 빼 놓은 제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것이 있었다면 왜 진작에 쓰지 않고 있다가 100만명 이상의 희생이 난 지금 거론하는지도 이상하다. 그와 동시에, 트럼프가 제재 강경책을 어느 정도 막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내에서조차 제재에 대한 공감대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재의 부메랑 효과: 미국과 유럽 스스로의 피해, 러시아 이득

경제 제재는 본질적으로 상호 이익에 기반한 경제 관계를 끊는 조치이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는 쪽과 제재를 받는 쪽 모두에 피해를 초래한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을 무시한 채 단방향적 응징 수단으로 제재를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은 러시아와의 무역 단절로 인해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그 결과 자국 산업과 소비 시장 전반에 걸쳐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었다. 제재가 목표로 삼은 러시아보다 시행한 유럽이 더 큰 피해를 본 셈이다.

 

러시아는 제재 직후 일시적으로 경제적 충격을 받았지만,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곡물 생산력,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제조 기반을 바탕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나아가, 자국 산업을 재편하고 중국, 인도 등과의 무역을 확대하면서 제재를 오히려 경제적 자립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뿐 아니라 브릭스 국가들의 결속이 강화되었고, 글로벌 무역 질서는 서방 중심에서 벗어나 양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재는 결과적으로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의문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지시보다는 독자적 노선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서방 패권의 약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흐름이자, 경제 제재가 더 이상 결정적인 전략 도구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서방의 전략 실패와 '종이호랑이' 이미지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의 민간 핵 프로그램조차 통제할 권한이나 능력이 없다. 이는 미국의 외교적 권위가 약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제재가 이라크 같은 소국에는 작용했지만, 러시아에는 자급자족 체제가 있어서 효과가 적다.  서방은 신중하지 못한 제재 전략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무너뜨렸다. 과거에는 '무적'으로 보였던 이미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능력 부족이 드러났다. 과거에는 서방의 압력에 쉽게 굴복했던 러시아와 중국은 국제사회에 "서방도 별거 아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이는 서방의 외교적 설득력과 제재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러우전을 통해 미국의 약해진 위상을 설명한 슬라이드. 출처 2024년 11월 5일 웅달책방 출연시 발표한 자료

 

자국산업 보호 효과, 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산업 재건

러시아는 수입 대체를 통해 자국 내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정치적인 반발도 적다. 중국, 인도 등과의 무역을 강화하며 새로운 공급망을 형성중이다. 자립에 대한 자부심과 국가적 역량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내 많은 기업들이 서방 제재로 인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전통적으로 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민간산업이 약했던 러시아는 그동안 자국시장에 진출하여 시장을 지배해왔던  유럽과 미국 기업들이 떠난 시장을 러시아 기업들이 대체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 정부는 떠났던 기업들에 대해 앞으로 있을 재진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이는 제재가 러시아 경제의 자립성과 내수 활성화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시각을 반영한다

 

제재가 시작되어 보잉과 같은 민항기 제조회사가 부품 등을 공급하지 않자, 상당히 어려움에 봉착했던 러시아는 그동안 개발하고 있었던 PD-14 엔진 개발을 가속화하여 개발에 성공한다. 이 엔진은 기존의 서방의 엔진보도 훨씬 성능이 좋아 당장 큰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 국내 여객기를 개발하고 운영하여, 이제 세계 민항기 시장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중국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보잉사의 계약을 취소하는 등의 대응이 가능했던 것도 이 같은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제재는 자국산업 보호의 기회가 된다. NO재팬 시기에 일본의 반도체 소재 제재에 대응해서 국내 반도체 소부장 산업이 약간의 성장의 기회를 잡았던 것과 비슷하다.

 

 

관세와도 유사한 효과

관세는 제재와 마찬가지로 결국 자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조치이며, 그 비용은 수출국이 아니라 수입국, 즉 이를 시행한 서방 국가들이 직접 부담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풍자하듯, “미국도 러시아처럼 제재를 받아야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이는 제재나 관세가 오히려 내부 산업을 자극하고 재건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관세 전략을 조롱하는 동시에, 외부 자극이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단순한 실패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필자는 이 정책이 경제 원리를 무시한 채 감정적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전략적 목적과 논리를 기반으로 했다고 본다. 당시 트럼프는 무너진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고, 해외로 빠져나간 미국 기업들을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관세를 활용했다. 즉, 리쇼어링을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압박 수단이었으며, 그 효과를 단기간에 판가름하기는 어렵다. 특히 집권 초기의 강한 추진력은 기업들에게 실제적인 압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세 정책의 성공 여부는 외부 환경보다 내부 구조에 달려 있다. 핵심은 미국 내에서 자국 산업을 실제로 부활시킬 수 있는 ‘양질의 제조 노동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아무리 정책적 유인이 강해도, 이를 실현할 숙련 인력이 부족하다면 자립적 제조업 회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국 산업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질의 노동력 공급이 핵심이며, 이는 관세 정책을 포함한 모든 산업 재건 전략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관세에 관한 더 깊은 논의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트럼프-푸틴 대화의 효과와 서방의 두려움

유럽은 트럼프가 푸틴과 대화했다는 사실에 격분하고 있다. 그 이유는 푸틴과 대화하면 다른 서방 지도자들도 러시아와 직접 대화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푸틴은 절대악"이라는 서방의 내러티브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가 외교 무대에서 자국 입장을 직접 전달하게 되면, 서방의 '제재로 붕괴' 라는 시나리오가 흔들리게 된다. 서방의 제재가 의도와는 달리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러시아를 더 자립적이고 강하게 만들었고, 서방 스스로의 경제와 외교적 위상을 약화시켰다 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