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협상 Negotiation

메드베데프의 최후 통첩

진재일 2025. 5. 23. 23:11

그동안 강의, 회의참석, 채널 출연 등 다른 사정으로 밀렸던 트럼프-푸틴 통화와 관련된 내용을 불금과 주말을 맞아 포스팅을 한다. 이 포스트의 내용은 다 출처의 견해와 필자의 견해가 혼합된 소위 짬봉이다. 러시아 논객의 칼럼과 DURAN 을 운영하는 영국의 알렉산터 머커리스로가 말하는 최근 쌍테 빼제르부르크의 법조인 모임에 참석하여 러시아인들의 정서를 취재한 내용이 섞여 있으며, 회담 구도와 전장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견해도 들어있다. 따라서 근거를 제시하기 힘든 견해도 있으며, 상당한 분석도 있다. 그리고 어떤 내용들은 그동안 관찰로 생긴 통찰력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입증이 곤란한 주장들이 있음을 이해하시고, 각자가 해석을 하시기 바란다. 포스트의 목적은 현재의 흐름을 가능한한 가깝게 추정해가기 위함이다.

루키아노프의 역할 분담론

일단 이 포스트는 표도르 루키아노프의 칼럼에서 시작한다. KOMMERSANT에 개재한 칼럼에서 표도르 루키아노프는, 역할 분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① 트럼프는 러시아가 제안한 틀, 즉 러우간의 직접대화에 대한 미국이 중재자와 보증자인 역할에 점차 동조하고 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것이고, 서유럽은 이 시나리오에 배제됨으로써, 분쟁의 당사자 즉 공동교전국의 위치에 머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EU는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② 이들이 선호하는 모델은 우크라이나, EU, 미국으로 구성된 공동 우크라이나를 전제로 한다. 이들이 러시아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제재를 통해 압력을 조율하며, 회담 조건을 마련하는 것인데, 트럼프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일단 이들의 집단적 압력에 대해 트럼프는 점차 확실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에게는 현단계에서 협상의 실질적인 부분은 부차적이다. 그에게는 협상의 결과보다 외형이 중요하며, 협상의 리듬을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대응하고 있다. 서유럽이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도 서유럽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따라서 남은 핵심적인 질문은 이같은 역할 분담의 지속 여부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러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대화에 적응하고, 서유럽은 조용히 청중으로 밀려나는 새로운 외교적 국면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의 해설

루키아노프의 설명을 아래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①맨위에 있는 구도는 현재의 구도이며, 3그룹이 모두 러시아와 교전을 하고 있는 공동교전국이다. ②그 다음은 그동안 트럼프가 취하려고 시도했던 모습이었다. ③마지막은 유럽이 모두 러시아의 협상 상대에서 제외된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유럽이 협상에서 배제된 것은 그들이 평화제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2030년을 대비해서 군비를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1차 민스크 협정과 2차 민스크 협정에서 이들이 러시아를 속였기 때문에 러시아는 그들을 믿을 수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교전의 직접 당사국이고, 이에 따라 협상의 상대는 되지만, 미국의 보증이 없으면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믿을 수 없는 상대이다. 루키아노프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표현이 이를 의미한다.

 

 

협상 국면에 접어들면서 바뀐 구도. 오른 쪽 아래 그림이 현재의 구도이며,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지속성이 중요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최후통첩

트럼프와 푸틴 간의 전화 통화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교 협상으로 종결지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내부에는 이 전쟁을 반드시 "군사적 승리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결의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협상을 통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진 상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법률 포럼에서 연설한 디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을 “우크라이나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표현하며, 만약 러시아의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협상 결렬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정치적·국가적 붕괴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우 강경한 입장이다. 

 

메드베데프는 또한, 러시아 내부에는 애초부터 협상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해체를 원하는 강경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러시아 지도부가 절충보다는 전면적 승리를 통해 전쟁을 끝내려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외교적 타협이나 서방의 중재 노력에는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으며, 현재의 전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승리 외의 어떤 선택지도 고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필자의 해설

필자는 ' 협상보다 종전이 빠를 것'이라는 표현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해왔다. 만약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바뀐 역할을 받아들인다면, 협상의 국면이 유지되겠지만, 러시아는 이들을 믿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트럼프의 협상의 구도에 대해서 동조해주면서, 협상과 무관하게 전쟁으로 결말을 내려고 하고 있다. 결국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 여부에 달려있는 상황이지만, 이 구도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지원을 계속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러시아가 절대로 맹공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와 같이 서서히 갈아 넣으면, 우크라이나가 지쳐서 쓰러지는 것을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협상 방향

현재 러시아는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방안으로 ‘이스탄불 플러스’(Istanbul Plus)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평화 협정 초안을 준비 중이다. 이 문서는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에 논의되었던 이스탄불 협상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러시아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보다 명확히 반영한 형태로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초안은 2024년 6월경 미국에 제시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미국이 젤렌스키에게 협정 수용을 압박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러시아 측은 이 문서가 사실상 항복 문서(memoranum of capitulation)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참여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메드베데프는 이러한 협정을 젤렌스키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점까지 시사했다. 즉, 러시아는 단순한 외교 문서를 넘어서, 체제 전환(regime change)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네오콘과 글로벌리스트의 저항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젤렌스키가 협상을 거부할 경우, 그 책임이 반드시 그의 개인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군부 내부에서도 러시아의 조건을 수용하는 협정에는 강력한 거부감이 있으며, 만약 젤렌스키가 이를 수용하려 할 경우 국내 정치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젤렌스키 한 사람만이 아니라, 유럽 지도부와 미국 네오콘 세력이 공고히 형성한 정치 연합(coalition)이다. 이 연합은 젤렌스키가 어떤 형태로든 협상에 응할 경우, 그를 지지하기보다 오히려 정치적 부담과 압박을 더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아무리 명확한 평화 조건을 내건다 하더라도, 네오콘 글로벌리스트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는 유럽과 미국 내부의 정치 구도가 젤렌스키의 거부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평화 협정 체결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리고 이런 국제 정치의 교착 속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계속 이어가며 군사적으로 종결짓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결국은 이 전쟁은 러시아가 오래 버텨서 이기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유럽의 전쟁 전략과 트럼프 책임론

러시아와의 전쟁을 바라보는 유럽의 입장은 점점 더 극단적인 선택으로 기울고 있다. 유럽 지도부는 전쟁이 장기화되어 우크라이나가 붕괴하더라도, 러시아와의 협상이나 평화 체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말해, "러시아와의 타협은 곧 패배"라는 프레임이 유럽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으며,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러시아와 공존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런 입장은 단지 감정적 반감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은 지금 전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나중에 미국이 다시 러시아에 적대적인 자세로 돌아올 경우 NATO의 결속과 미국의 대서양 동맹 복원을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은 전쟁 종결을 위한 외교적 해결책보다는지금의 희생을 통해 러시아 위협을 상존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안보 전략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네오콘 진영은 만약 협상을 통해 평화가 이루어지면 불가피하게 "왜 이렇게 늦게 외교를 시도했는가", "수많은 희생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를 왜 방기했는가"라는 도덕적·정치적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 질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가능한 한 전쟁의 실패 원인을 외부로 돌릴 필요가 있다.

 

외부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트럼프이다. 실제로 최근 외교·안보 전문 매체들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어느 정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으나, 트럼프가 러시아에 유화적 자세를 취하며 이를 망쳤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예컨대Foreign Policy 등은 트럼프가 푸틴에게 조종당하고 있으며무능한 협상가이자 미국의 국익을 배신한 인물로 몰아가는 프레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단지 트럼프 개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그의 지지 기반 전체(MAGA 운동)를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적 목적을 담고 있다. 유럽과 미국 주류 진영은 트럼프를 "전쟁을 실패로 이끈 책임자"로 낙인찍음으로써,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운동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계획을 점차 실현 중이다.

 

결국 이 구도에서 유럽은 전쟁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대신우크라이나의 붕괴와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트럼프를 희생양으로 삼고 전쟁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전략을 택한 셈이다. 러시아와의 타협은 패배이자 굴욕이며, 이를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탓할 필요가 있었고, 적절한 희생양으로 트럼프가 선택된 것이다.

 

러시아 내부의 전시 분위기와 전쟁 이후에 대한 인식

이토록 복잡한 국제적 갈등 속에서도 러시아 내부, 특히 민간 사회와 군 내부에서는 전쟁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목적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 포럼에 참가한 알렉산더 머커리스는, 포럼에 참가한 대부분의 러시아 법조인들이 정치적 인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이 반드시 러시아의 ‘성공’으로 끝나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애국심이나 체제 순응을 넘어서,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짓지 못할 경우 ‘배신감’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태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군 내부에서도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도 ‘완전한 승리’가 아닌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러시아 사회 전반이 이제는 승리 외에는 어떤 결말도 납득하지 않겠다는 심리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나 외교적 고립에 대해서도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으며, 그보다는 장기전을 감수하더라도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이끌어내겠다는 결의가 강해지고 있다. 디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이를 명확히 드러내며, 만약 서방이 자신들의 제안(‘이스탄불 플러스’ 협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전쟁을 지속할 것이며, 그 최종 목표는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권의 교체 혹은 해체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간의 갈등, 특히 트럼프와 유럽 지도자들 간의 분열을 관찰하고 있을 뿐, 그 분열이 외교적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상관없이, 자신들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 러시아는 더 이상 외교적 중재나 미국 내 정치 상황에 기대지 않고, 군사력과 전장 결과만을 통해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려 한다.

 

요컨대, 러시아는 현재 이 전쟁을 단지 지정학적 충돌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자존을 걸고 싸우는 전면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러시아 사회는 군인부터 민간 법률가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일체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전쟁의 외교적 출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지금, 러시아는 오직 승리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장의 긴장은 앞으로 더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필자의 해설

알렉산더 머커리스가 전하는 이 같은 유럽의 움직임에서 필자의 생각에는 러시아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독일이다. 지난 80년 동안 러시아인들은 독소전쟁의 원흉을 나치라고 배웠고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독일인이 원수가 아니고 나치가 원수였던 것이다. 그러니 독일에 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표출하지 않았거나 못해왔었다. 그런데 앙겔라 메르켈의 민스크2 협정 관련 발언에서 시작하여, 숄츠에서 나아가 메르츠의 전쟁광적인 움직임에서 러시아인들은 나치가 문제가 아니고 독일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다.

 

이같은 느낌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정확히 진단하고 측정할 수는 없지만, 특히 선거 이후 AfD가 배제되는 모습을 러시아가 나이브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80년 동안의 독일의 사과 연기는 3년간에 말아 먹었다. 러시아인들의 기억은 오래간다. 러시아인들에게는 독일과의 관계는 회복 불능으로 보인다. 독일에게는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인들과 반데라이트는 용서해도 독일인들은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