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협상 Negotiation
평화협상 이전에 휴전을 하자는 주장이 헛된 이유
진재일
2025. 5. 24. 21:48
1. 배경 설명
FGUP과 젤렌스키가 30일 휴전을 요구하면서 제재를 협박하는 최후통첩을 날린 뒤에 결국 이스탄불에서 3년 여 만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간의 회담이 이루어졌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내러티브 전이었고, 거짓이 난무하였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이상한 주장을 일삼고, 전문성이나 관심이 적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쟁의 진실을 가려서, 선과 악의 구도를 바꾸었다. 사람들이 속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수행할 수 없었던 전쟁을 이렇게 끌고 왔던 것은 서방이 내러티브를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막바지로 들어가면서 숨길 수 없는 진실들이 드러나니까, 이제 앞 뒤가 꼬이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확인이 가능한 거짓 주장
전쟁 기간 내내 형편 없다고 했던 러시아군이 유럽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면서 군비를 강화자고 주장한다. 어떻게 컴퓨터 칩이 없어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뜯어서 무기를 만들고, 삽으로 전투를 하는 허접한 러시아군이 유럽에 어떻게 쳐들어올 것인지, 그런 군대가 뭐가 겁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질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질문하면 처벌한다. 정치권이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진실에는 대꾸하지 않는 것이다. 파시스트로 변했다.
러시아의 능력은 둘째치고, 유럽에 뭐가 있다고 러시아가 쳐들어갈 것인지는 말을 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아무 것도 없이 빚 밖에 없는 유럽에 뭘 뺏으려고 목숨걸고 쳐들어갈 것인가? 자원은 유럽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다. 서방이 지난 50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면서 약탈한 것은 자원이다. 유럽에는 자원이 없으므로 러시아가 유럽을 탐낼리 없다.
30일 휴전에 대한 주장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평화의지가 없다는 주장은 약간의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일반 대중은 휴전이 무슨 의미인지, 협상은 무슨 의미인지, 평화회담은 무슨 의미를 가진 용어인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여 내러티브 전을 하면서 전쟁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토론이나 상세한 보도가 전혀 없었던 서방의 언론들에 길들여진 대중은 지금 진행되는 상황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무엇보다도 앞으로 진행될 방향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 주장이 왜 거짓인지 필자도 설명할 수 있지만, 역사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반박하는 이스탄불 회담의 러시아측 대표였던 역사학자 메딘스키의 설명이 압권이다. 그는 과거 문화부 장관도 역임한 바 있는 역사학자이면서 푸틴의 보좌관이다. 푸틴이 연설마다, 인터뷰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설명하는 것은 메딘스키의 도움이 클 것이다. 그의 8분여 인터뷰는 VIORY에 있지만 러시아어여서, 그보다 좀 짧지만 영어로 설명하는 힌두스탄 동영상의 링크를 건다. 아래에는 인터뷰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2. 메딘스키의 인터뷰 내용 설명
러시아는 전쟁을 원치 않았고, 협상을 시도했다
메딘스키는 협상 당시 자주 열어보던 폴더에 인용문과 중요한 기록이 들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 문서에서 2022년 2월 말, 즉 전쟁 초기 고멜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잠정적으로 합의했던 내용을 찾아내었다. 그는 그 당시에 우크라이나가 평화에 동의했더라면 전쟁이 종결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스탄불 회담의 진행과 서방 개입
이스탄불 회담에서는 초기보다 조금 더 복잡한 조건이 오갔지만, 그래도 진전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서방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고 한다. 메딘스키는 이와 비슷한 역사적 사례로 19세기 러시아-터키 전쟁과 베를린 회의를 언급한다. 당시 러시아와 터키가 세운 세인트스테파노 조약이 서방의 간섭으로 수정되었고, 이것이 발칸 전쟁(1912~1913) 및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휴전 후 협상"이라는 통념에 대한 반박
많은 사람들이 "먼저 휴전을 하고 협상을 하자"고 주장하지만, 그는 이것이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하며 "전쟁과 협상은 동시에 진행된다"고 강조한다. 메딘스키는 전쟁 중 협상이 동시에 이루어진 예시로 다음을 들면서 "협상은 항상 전투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 베트남 전쟁: 미국과 베트남은 15년 동안 교전 중에도 협상을 계속했다.
- 한국 전쟁: 교전 중에도 협상이 이어졌다. (*필자 주:이는 우리도 아는 바이다. 1950년 12월 부터 협상 노력이 시도되었으며, 본격적인 협상은 1951년 7월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이어졌고, 1953년 8월 28일 유엔총회에서 승인되었다)
- 소련-핀란드 전쟁: 스탈린은 평화 협정을 제안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핀란드를 부추겨 소련과 합의를 못 하게 했다고 한다.
대북방 전쟁과 스웨덴: 반복되는 역사
메딘스키는 이어서 18세기 초 러시아와 스웨덴 간 대북방 전쟁을 예로 든다. 이 전쟁은 21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발트해로의 접근권과 소수의 완충 지대만 원했지만, 스웨덴은 항복을 거부하고 "마지막 스웨덴 병사까지 싸우겠다"고 고집했다고 설명한다.
표트르 대제는 협상을 원했으며, 스웨덴에게 "우리는 원래 러시아 땅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주변만 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웨덴의 카를 12세는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했다. 이때 영국과 프랑스가 스웨덴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으며, 이는 당시 강대국들이 러시아의 성장을 막으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1718년, 양국은 네덜란드 홀란드에서 평화 협상을 시작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직접 대화하지 말고 중재자를 통해 하라"고 주장하며 방해했다. 이는 두 강대국이 러시아-스웨덴 전쟁이 지속되길 바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실패하고, 1721년 러시아는 승리자 입장에서 '니스타트 조약'을 체결한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커렐리아, 발트 해 연안 지역 등을 획득하고, 스웨덴은 유럽 열강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전쟁 전 스웨덴의 면적은 프랑스의 두 배였으나, 이후 북독일·발트 해·핀란드 등 주요 영토를 잃었다.
러시아의 교훈과 역사관
이 사례를 통해 메딘스키는 러시아는 협상을 원하지만, 서방의 개입이 전쟁을 불필요하게 장기화시킨다고 주장한니다. 그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결국 자신들의 것을 되찾기 위해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그는 "러시아를 속이거나 빼앗지 말라. 시간이 지나면 러시아는 반드시 되찾으러 올 것이다." 라는 비스마르크의 말을 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