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I
뉴노멀의 그늘: 유럽의 '정신적 군사화'와 민주주의의 위협
진재일
2025. 7. 11. 00:32
포스트 취지
신임총리 메르츠의 점차 높아지는 대 러시아 적대적 발언을 통해, 독일 내부의 변화에 대한 우려를 하던 중에, Neutrality Studies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교토대 조교수 파스칼 로타즈와 마르쿠스 클뢰크너 사이의 대담 프로그램을 청취한 뒤, 이 내용을 좀 쉽게 정리하였다.
해당 대담은 독일어로 진행되었고, 이를 영어로 더빙한 것을 어제 날자로 업로드한 것이며, 필자는 영어 더빙 버전을 듣고, 정리한다. 마르쿠스 클뢰크너는 최근에 2권의 저서를 집필하였는데, 사회자인 파스칼 로타즈 박사는 그 책들을 읽고 인터뷰를 하였다. 책은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독일어 가능자가 아니면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비독일어권 시청자분들에게는 이 대담을 통해, 현재 독일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화 내용 중에는 보르도의 문화자본론과 같은 주제도 언급되는 것이 흥미롭게 한다. 대화의 전체 내용은 한글로 번역해서 좀 다듬었다. 번역기의 어색한 점만 좀 제거한 상태이지만, 번역본을 펼쳐 놓고, 유튜브 영상을 들으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클뢰크너의 저서
대담 내용 번역 파일
대러시아 압박 수위를 높이는 독일과 미래의 참사, 마르쿠스 클뢰크너.pdf
0.59MB
대담 유튜브 링크
대담 내용 요약
최근 유럽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 중 하나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정신적 군사화'다. 이는 단순히 국방력 강화나 군사비 증액과 같은 현실적인 안보 논의를 넘어선다. 대신, 사회 전반에 걸쳐 호전적인 분위기가 만연해지고, 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모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전쟁 준비(Kriegstüchtig)'와 같은 단어가 공공연히 사용되며,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군대 미화와 맹목적인 '애국심' 선전이 강화되는 기현상까지 목격된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특정 갈등의 직접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오히려 언론의 교묘한 선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어렵게 쌓아 올린 평화의 역사에 대한 의도적인 망각, 그리고 특정 사회 계층의 무비판적인 순응적 태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기저에는 '새로운 정상'이라 불리는, 지극히 왜곡된 현실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의 사례는 이 '정신적 군사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역사와 수천만 명에 달하는 구소련 국민들의 희생, 그리고 통일 당시 러시아(구소련)가 보여준 관대함과 기여를 고려할 때, 독일 사회는 줄곧 군사 문제에 대해 극도로 신중하고 성찰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과거 독일인들에게 군국주의는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치욕스러운 기억이었다.
그러나 최근 독일 정치인들이 "러시아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전쟁 준비'를 외치며 군비 증강을 당연시하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선 충격을 안긴다. 이는 단순히 수사적 표현이나 정책적 전환을 넘어선다. '방어 능력(Verteidigungsfähig)'이 아닌 '전쟁 준비'라는 단어 사용은 그 자체가 위험한 언어 조작을 내포한다.
'전쟁'이라는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개념에 '유능함(tüchtig)'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결합함으로써, 전쟁을 마치 추구하고 노력해야 할 미덕처럼 포장하려는 교묘한 의도가 숨어있다. 이는 대중의 잠재의식 속에 전쟁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무디게 하고, 호전적인 분위기를 용인하게 만드는 심리전의 일환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신적 군사화'가 언론을 통한 대규모 선전과 궤를 같이하며 더욱 강력하게 확산된다는 점이다. 미디어는 특정 '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활성화하며 대중의 두려움과 증오를 조장한다. 9/11 테러 이후 전 세계를 휩쓴 '테러와의 전쟁'에서 시작되어, 보이지 않는 적 '바이러스'를 상대로 '전선 작업'과 '전쟁 서사'를 통해 국민적 동원을 유도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쳐, 이제는 '사악한 러시아'가 주요 적이 되어 서방 전체의 단합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선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미디어가 던지는 미끼를 무비판적으로 삼키고 선전에 오염된 정보를 기꺼이 흡수하려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군대(분데스베어)를 '젊은 남녀가 만나고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통합의 장소'로 미화하며 '애국심'을 주입하고, 심지어 특정 역사가가 "어머니들이 다시 아들을 희생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발언이 공론화되는 것은, 과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이들을 '진정한 남자라면 참전해야 한다'고 선동했던 치욕스러운 역사를 반복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평화 운동과 반전 문학, 그리고 수많은 반전 영화와 노래를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선전을 하는 것은 가장 비극적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배경에는 사회 계층의 특성과 '순응적 아비투스(habitus)'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사회학적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에 따르면, 중산층 및 상류 중산층에 속하는 지식인 엘리트 계층은 사회적 지위 상승과 현상 유지라는 욕구에 따라 지배적인 권력과 언론이 제시하는 '정통적인' 세계관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고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에는 반전 성향이 강했던 교사들과 같은 좌파적 집단조차도 이제는 180도 선회하여 친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들이 비판적 사고보다는 안정과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며 주류 담론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교사들이 학생들을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경한 방역 조치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했던 모습은 이러한 경향의 단적인 예시다. 이성과 교육을 소유한 사회의 공직자들이 대규모 선전에 문을 열어주고 침묵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회의 치욕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정신적 군사화'는 유럽 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요소로 작용한다. '정상'의 개념이 왜곡되어, 가자지구의 집단학살이나 이란에 대한 침략 행위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이 '정상'으로 묘사되는 지경에 이른다.
동시에 유럽연합(EU) 내에서 특정 정치 세력을 배제하고, 반대 목소리를 검열하며, 야당을 탄압하는 '통합'의 움직임이 강화된다. 루마니아에서 중요한 정치인이 선거에서 제외되고, 아르메니아에서 야당에 대한 숙청이 진행되며, 독일에서 AfD와 같은 반대 정당에 대한 비난과 금지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경향의 명백한 징후들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의제에 반하는 모든 목소리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를 억압하려 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쟁할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이 억압되고, 언론이 편향된 정보만을 제공하며, 시민들이 이에 침묵할 때, 민주주의는 점차 그 생명력을 잃고 독재적인 흐름으로 변질될 위험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