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진화

기동전의 미래

진재일 2025. 2. 20. 02:05

매번 새로워지는 전쟁양상

전쟁 만큼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것은 없다. 인류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전쟁은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과거의 전쟁으로 미래의 전쟁을 준비한 쪽은 항상, 새로운 모습의 전쟁에서 패한다. 나폴레옹의 상상력이 유럽을 뒤집었다면, 마지노의 상상력은 프랑스를 패퇴하게 하였다.

기동이 사라진 러우전

휴대용 대전차 화기의 활약

벌써 3년을 넘어가는 러우전의 초기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키에프 북쪽에 40마일의 장경을 가진 기계화 행렬이었다. 도중에 휴대용 대전차무기에 당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전차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3년 사이에 NLAW, 재블린 등은 전장에서 사라졌다.

 

드론의 거듭된 진화

FPV 드론의 시대가 왔다. 2차대전 대규모 기동의 상징이었던 곳 쿠르스크는 기동장비의 무덤이 되고 있다. 러시아 전차 손실의 65%가 드론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차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3년간 가장 많이 진화한 것이 드론이다. 드론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보다 우수했다. 그러나 전쟁 중간 이란제 드론을 복제생산하여 양산을 하면서 균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양쪽이 업치락뒤치락하면서 드론이 변해왔다. 이제는 광섬유 드론과 인공지능 드론의 등장으로 재밍에 의한 대드론은 벌써 구시대가 되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그물로 잡는 것과 AAA 같은 화기이다. 

 

드론과의 가성비 경쟁에서 패배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드론은 기동전력의 저승사자가 되었다. 게임은 2차원과 3차원의 차이다. 땅에서 기는 것은 공중을 나는 것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발당 2만 파운드 즉 3만불, 한화로 4천5백만원 정도하는 NLAW는 800미터 거리에서 전차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기에 약 500불, 한화로 75만원이 안되는 FPV드론과 탄두의 조합으로 10마일 내에 있는 전차를 보라매보다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공지전 교리를 고집하는 NATO장군들

그렇다 드론이 기존의 휴대용 대전차화기를 사라지게 했다. 그런데, 지금 NATO의 장군들은 우크라이나 군이 NLAW를 RPG 처럼 사용한다고 나무란다. 지적의 핵심은 NATO의 공지전 교리는 협조된 공격과 정밀한 타격을 중심으로 하므로, NLAW를 RPG처럼 낭비하는 우크라이나 군을 질타하는 것이다. 구소련의 값싼 대전차 화기 PRG를 5-6발을 쏘아서 적의 탱크 1대를 공격하는 개념으로 값비싼 NLAW를 낭비한다는 것이다. NLAW를 5-6발 한꺼번에 SALVO 개념으로 쏘면, 10만 파운드, 한화로 2억을 쏟는 것이다. 그리고 발사관이 중요한데, 이것도 버리고 간다고 한탄을 한다.

러시아의 교리(좌)와 NATO의 교리(우) 비교, 출처: Telegraph

 

교리변화의 필요성

낭비는 그다음 문제로 하고, 공지전 교리에 의한 협조된 공격이 이 전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협조된 공격은 매우 많은 훈련을 요구한다. 표적에 대한 타격시점을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전투체계가 매우 연동되어 있어야 하며, 실시간 전술데이터링크가 잘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전은 이런 환경이 아니다. NATO의 공지전 교리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 조금더 진화한 공지전 교리인 NDO도 이미 지난 시대의 교리가 되어버렸다.

 

현장에서 생존한 병사들

공지전과 NDO 모두 전장에서의 공중우세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전장에서는 기존의 공중우세의 개념이 사라져버렸다. 기존의 공중우세는 러시아가 전쟁 초반에 이미 달성했다. 우크라이나의 공군력과 대공방어능력을 초토화했다. 바로 옆에서 3년간 벌어진 전쟁의 양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깨닫지 못한 NATO의 장군들은 현장에서 싸워온 우크라이나 병사들보다 훨씬 개념이 떨어진다. NATO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장비를 제공하고 훈련을 지도했지만, 그들의 구시대적 개념을 잘 배우면 잘 배울수록 전장의 생존확률은 떨어진다. 전장의 진화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 매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공중우세를 확보한 결과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의 항공기가 압도해야 한다. 물론 러시아의 항공기가 압도한다. 러시아의 항공폭탄은 UMPK 키트를 장착하여, 90마일 밖에서도 정확하게 표적을 공격한다. 그런데도 항공기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항공기들의 출격기지는 러시아 국경내 300km 밖에 있다. 즉 300km 밖에서 국경에 도달하여, 표적에 150km 밖에서 투하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항공기를 공격할 방법이 매우 제한된다. 150km에 도달하는 대공화기가 필요한데 그 종류와 수량이 많이 없다.

 

드론에 시달리는 기동전력

이렇게 안전한 공역인데도 지상의 러시아군은 수km에서 수십 m 상공에서 계속 빙빙그리는 드론에 시달린다. 전방에 전개된 어떤 중화기도 위장막이 필요하다. 결국 포상과 마찬가지로 진지를 만들고, 위장을 한다. 야포, 박격포 뿐 아니다. 전차 장갑차도 모두 마찬가지다. 보이는 즉시 타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FPV 드론은 대부분의 시간을 표적을 탐지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막강한 T-14가 들어온다고 해도, 탐지에 5분, 파괴에 3분이면 충분하다. 10분을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전차의 대규모 대형으로 진행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 지상에는 FASCAM이 깔려있고, 공중에는 FPV 드론이 쉴새없이 돌아간다.

 

전통적인 공중우세의 개념은 사라졌다. 따라서 공지전과 MDO은 공중우세 달성이 불가능한 전장에서 아무 소용이 없는 교리이다. 오히려 타격에 소요되는 복잡한 절차와 협조된 네트워크의 관리 등이 오히려 부담이 될 뿐이다. 심지어는 차량화 부대가 오토바이 부대로 바뀌었다. agility로 인해 생존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포병과 화력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것은 포병이다. 전투피해의 대부분은 포병에 의한 것이다. 전장에 무수히 많은 드론들이 생존하므로, 포병은 표적획득수단이 정밀해진다. 멀리서 정밀하게 많은 수량으로 공격하는 것이 최고다. 포병화력이 월등한 러시아 쪽으로 운동장이 기운 게임이 되었다. 화력은 포병, 항공, 미사일 등의 조합이다.

 

전자전 능력과 C4ISR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은 전자전 능력이다. NATO의 PGM을 무용지물로 만드는데 2달이면 충분했다. 엑스칼리버, HiMARS, JDAM, GSBD 등 초고가, 최첨단 무기들이 고물보다 못한 신세가 되었다. 표적정보획득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스타링크가 그것이고, 미국의 위성정보, 각종 특수전기, 정찰자산 등이 끊임없이 우크라이나군의 enabler였다. 그런데 러시아의 그것도 미국에 못지 않았다. 러시아군이 전력투사능력은 미국에 못미치지만, 자국의 국경 부근의 전쟁에서는 미국을 압도한다.

 

이미 끝난 전쟁, 남은 전투, 다음 전쟁에 대한 상상의 시작

소위 peer(동급) 간의 전쟁이 된 것이다. 이 전쟁은 사실상 NATO와 러시아간의 전쟁이었다. 협상단계에 들어갔고, 우크라이나에 온갖 비난을 해대지만, 사실상 미국은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에서 패배했다. 이 전쟁은 적어도 10년 전에 이미 발생했던, 미국의 군비경쟁의 패배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미국은 이제 매우 바쁘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15년 이상 뒤진 미국이 다시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에서 이기려면, 미군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 아마 30년은 필요할 것이다. 그 사이에 미국이 해체되지 않으면 수퍼파워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 전쟁에는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