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파키스탄과 중국의 CPEC과 과거 오랫동안 중국-파키스탄의 군사기술 지원 등의 사례를 들어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가 나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제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중국과 인도가 BRICS에 같이 가입해있지만, 국경분쟁 등의 역사적 문제도 있었고 경쟁관계도 있으므로 중국-파키스탄의 사이가 좋아진 면도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편을 명확하게 가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 미국 파키스탄 관계의 역사
냉전시대: CENTO, SEATO 가입
일단 미국과의 관계를 설명하면, 파키스탄 독립 직후인 50년대 부터 냉전 기간 내내 미국은 파키스탄을 소련에 대항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반공 진영에 포함시켰다. CENTO(Central Treaty Organization, 중앙아시아 조약기구, 미국, 영국,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 SEATO(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 미국, 프랑스, 영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파키스탄 ) 등에 파키스탄을 가입시켰다.
자세히 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소위 P5 중 서방의 국가들이 주도한 것과 인도가 빠진 것을 알 수 있다. 즉,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소련과 가까웠던 인도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멕킨더 이론에 따라 하트랜드를 저지하기 위해서 배가 들어갈만 한 곳은 모두 분쟁을 일으켜둔 영국의 역할이 크다하겠다. 여하튼 미국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파키스탄에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경제 원조 등의 막대한 지원을 했다.
아크간 전쟁기 (1980-1990)
소련이 아프간 전쟁을 하는 10년 동안, 미국과 파키스탄은 무자헤딘 지원을 통해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공동 대응했다. 당시 CIA와 파키스탄 정보부(ISI)의 공조로 아프간 내 반소 무장세력 육성했는데,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걸쳐서 거주하고 있는 파슈툰인들을 파키스탄의 파슈툰 지방에서 피난 온 아이들을 가르친 배경으로 탈레반이 탄생하게 되었다. 인도-파키스탄에 대한 복잡한 역사는 서울대 강성용 교수의 영상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탈냉전기: 서로 이용하는 긴장 관계(1990~ )
아프간 전쟁이 끝나고 탈냉전기로 접어들자, 양국 관계는 소원해진다. 그러던 중, 1998년 파키스탄이 인도에 이어 핵실험을 감행하자 미국의 전면 제재 대상이 된다. 이후에도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이란·북한에 기술을 유출한 사건을 계기로 핵 확산 우려로 인해 지속적인 긴장이 유지되었다. 또한, 쿠데타로 정권 장악한 무샤라프 정권에 대한 미국의 신뢰도가 저하되는 등, 업다운이 존재하지만, 양측은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911이 발생하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하고, 이 때, 파키스탄을 활용하기 위해서 미국은 대규모 원조를 재개한다. 이를 통해, 2004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은 파키스탄 북서부 부족 지역에서 무인 항공기를 이용한 공격을 수행했고, 파키스탄 내 여러 공군 기지를 이용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했다. 알카에다 소탕 작전 등에서 파키스탄은 미국과 협력하는 등 관계가 개선되었지만, 탈레반 은신처 제공 등으로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의 신뢰가 약화되기도 했다.
한편 파키스탄은 파키스탄대로 2011년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은신처 급습(아보타바드 작전)으로 충격을 받았고, 파키스탄은 미국으로부터 ‘이중 게임’ 의혹을 받으며 신뢰를 상실하기도 한다. 이후 중국과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과 일정 거리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은 파키스탄의 실질적인 세력인 군부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사실에 가깝다.
지정학적 도구화와 유동적인 관계
미국은 파키스탄을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왔다. 따라서 냉전기와 9/11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막대한 군사·경제 원조(2000~2010년대 연평균 약 10억 달러 이상, 총 260억 달러)를 제공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보부(ISI)는 미국과 협력하면서 동시에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 카슈미르 관련 무장단체와도 연결된 이중적 행동으로 서방의 신뢰를 잃었다. 미국은 파키스탄을 '인도를 견제할 지렛대’로, 파키스탄은 미국을 ‘원조 공급자이자 국제적 방어막’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관계는 상대가 자국의 핵심 이익에 관여하지 않을 때마다 급격히 냉각되었다.
2. 중국 변수의 등장
군사협력의 역사
중국과 파키스탄간의 군사협력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1984년 전투기공동개발 프로젝트를 합의하여. 전투기를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하던 중, 천안문사태 이후, 미국이 중국에 대한 사업을 보이콧하게 되어 일시 중단되었지만 1990년대 부터 다시 개발하는 등 역사가 깊었다. 그러던 중 2018년 미국의 원조 중단 이후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여 고급 무기 체계와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일대일로 협력
동시에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활발하게 추진했던 2010년대 이후 파키스탄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을 통해 중국과 경제·군사적으로 더욱 긴밀해졌다. 중국과 파키스탄 양자가 모두 이익을 보는 구조인 좋은 거래였지만,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 봉쇄’를 목표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파키스탄이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파키스탄의 전략적 가치가 축소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3. 미국의 파키스탄 군부 통제
미국의 파키스탄 군부와의 뿌리깊은 관계
1956년부터 미국 군사 고문단이 파키스탄에 파견되었고, 파키스탄 군 장교들은 미국의 군사 아카데미와 전쟁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1970년대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미국은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중단했지만, 소련의 아프간전쟁으로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고, 앞에서 설명한대로 이후에도 여러차례 양국관계에 따라 군사지원이 변해왔는데, 이는 파키스탄의 실세가 군부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군사지원이 도구가 되는 것이다.
임란 칸 퇴출
전 대통령 임란 칸의 하야나, 퇴출은 미국이 개입한 것이 정설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일 임란 칸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과 회담 진행함으로서 서방 반감 유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CIA 드론 공격을 “파키스탄 영토에 대한 주권 침해”로 규정하여 비판한 바 있다. 또한 탈레반과 협상을 지지하며 미국의 반테러 노선과 충돌을 일으킨 바도 있으며,파키스탄 내 대미 비판여론 반영하여,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거부하였다.
외교전문 폭로
2022년 3월경, 파키스탄 외교관이 워싱턴 주재 대사관을 통해 본국에 전달한 외교 전문(Cypher)이 임란 칸에 의해 폭로되었고, 그 내용은 “임란 칸 총리가 계속 집권하면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불신임 투표를 통해 교체되면 양국 관계는 회복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정권교체 개입설의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그는 이를 명백한 정권교체 요구이며, 미국은 내정에 개입했다며, 자신은 러시아 방문(푸틴 회담)과 반미적 노선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고 했다. 사이퍼를 공개했지만, 이후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되었고, 실제로 불신임 투표를 통해 교제되었다. 현재는 금고형을 선고받고 정치 활동도 금지되고 있는 상태이다.
양국과계는 신뢰는 없는 공생관계
지난 70여년 간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는 서로를 이용했지만 신뢰하지 않았던 전형적인 실용주의 외교 관계라고 보면 사실에 가깝다. 현재는 파키스탄이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으며, 중국과의 연대 강화와 정권 교체, 경제 위기 등 내부 불안정성으로 인해 미국과는 제한적 협력만 유지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인도, 중국과의 지정학적 게임에서 파키스탄의 이용가치가 항상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을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 고리는 파키스탄 군부이다. CIA가 다른 나라를 통제하는 것은 무자헤딘, 알카에다, HTS, 네오나치 등 대부분 군부나 폭력집단이다. 정치권이 실세가 아닌, 군부가 실세인 구조에서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제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군부가 실세가 되게 만든 것도 CIA라고 보는 것이 더 사실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례에도 드러났듯이, 미국은 언제든지 버릴 준비도 되어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현재 인도-파키스탄 간의 분쟁은 다양한 추측을 하고 있다. 인도의 자작극설, 파키스탄의 테러조직 방관, 서방의 테러조직 사주설 등 신뢰할 수 없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한 관계의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는 다양한 설들을 들어보는 단계이지만, 좀 있으면 차차 배후가 밝혀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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