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의 본질과 전략적 변곡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어진 전쟁은 이제 단순한 국경 분쟁이나 지역적 내전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 전쟁은 기술, 전략, 국제 정치의 삼각지대 위에서 전개되는, 전례 없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진화해왔다. 특히 러시아의 점진적 진군, 우크라이나의 드론 중심 방어, 나토와 미국의 대응 지체 등은 현대 군사 체계의 구조적 전환 지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1. 러시아의 진군: 느리지만 전략적인 진척
현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여러 전선에서 꾸준한 진군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중후반에는 전반적으로 진격 속도가 주춤했으나, 2024년 봄 이후 다시 속도를 높이며 전략적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진군은 단위로 보면 월간 몇 평방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할 만큼 느리고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군은 도네츠크 남부 지역, 특히 벨리카 노보실카 서쪽에서 견고한 방어선을 돌파하고, 개활지를 향해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요 참호, 콘크리트 방어 시설, 지뢰지대 등을 이미 돌파한 상태로, 실질적으로 전략적 고지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진군 속도보다는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개방된 지형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지점부터는 군사적 병력 기동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기 때문이다.
많은 관측자들은 이 과정을 '새로운 대공세'라고 표현하지만, 실상은 2023년 초부터 시작된 지속적 공세의 연장선이다. 보급, 전선 유지를 감안한 ‘느린 공세 전략’은 러시아 특유의 소모전 방식과 연계된다. 소련 시절부터 구축된 러시아의 전쟁 철학은 '속도보다는 견고함', '결정적 돌파보다는 누적된 붕괴', 영토보다는 적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유생역량격멸' 등의 교리를 중시해 왔으며, 이번 전쟁에서도 그 양상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 러시아의 예비 전력과 대규모 공세 가능성
필자는 일전에 서방과 우크라이나 상대한 러시아의 소모전 에서 러시아가 주력을 사용하지 않고 준비해두었다는 설명을 한 바 있다. 러시아는 본격적인 전면공세를 준비하며 북부, 남부, 북서부 등 다양한 전선에 예비 병력을 대규모로 배치해 두었다. 이들 부대는 기존 전선에서 교전 중인 부대들보다 장비, 병참, 조직력에서 우위를 보이며, 일부는 두 개 사단 규모의 전투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대들은 나토의 직접 개입에 대비한 억지력일 수도 있고, 실제로 전선에 투입될 수 있는 전략 예비군일 수도 있다.
예비군 일부는 핀란드 국경 근처에도 배치되어 있는데, 이 역시 유럽 북부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현재 전황상, 이러한 병력 중 최소 한 개 부대 이상은 실제 전선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5~6월, 진흙철이 끝나고 기동 전술이 가능해지는 시기에는 남부 자포리자와 북부 수미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인 공세 전개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3. 우크라이나의 방어 전략과 제한된 현실
우크라이나는 진격 속도에 비추어 러시아가 전쟁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서구의 해석에 기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선의 고착과 지역적 붕괴는 시간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서부전선은 수년 간 몇 미터 단위로 전진했지만, 결국 전선 전체가 와해되는 시점은 단 며칠 만에 도래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도 동일한 구조적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하르키프, 도네츠크, 드니프로페트롭스크, 니콜라예프, 오데사 등 동남부 러시아어권 지역은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흡수하려는 지역으로 보이며, 여기에 대한 점진적 통제가 이뤄질 경우 우크라이나는 해양 접근권을 상실하고, 사실상 내륙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4. 드론 전쟁: 현대 전쟁의 핵심 축
이번 전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 드론의 역할이다. 드론은 전장의 판도를 바꿔놓은 핵심 전력으로, 정찰, 매복, 자폭, 기습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크라이나는 공군, 장거리 미사일, 포병 등 전통 전력에서는 열세에 있지만, 드론만큼은 전략적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자체 개발 드론으로 러시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으며, 러시아군 전체 사상자의 75%가 드론 공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보조무기가 아니라, 현대전의 핵심 전력이 완전히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
드론은 열 영상 추적, GPS 유도, 자율 주행, 매복 습격 등을 조합하며 적의 수송로와 야전거점을 지속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드론 부대는 나무나 구조물에 ‘매복’해 있다가 접근하는 차량이나 병력을 정밀 타격하는 등, 마치 맹금류처럼 지능화된 공격 패턴을 보이고 있다.
5. 나토와 미국의 대응: 늦어진 인식과 기술 격차
문제는 이러한 현대전에 대해 나토와 미국이 늦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최근에서야 드론 위협을 인식하고, 사단당 최소 1천 대 드론 보유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드론에 취약한 장갑차량을 점차 퇴역시키고, 드론 방호 체계를 갖춘 장비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후속 대응일 뿐, 선제 대응이 아니었다. 미국과 나토는 극초음속 미사일, 전자전, 방공체계, 자동화 기술에서 러시아, 심지어 우크라이나보다도 뒤처졌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무기력한 초강대국’이라는 이미지가 현실이 되는 중이다.
6. 실전 경험의 격차와 전술적 학습의 비대칭성
이 전쟁에서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실전 경험의 유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장 환경에서 끊임없이 전술을 실험하고, 그 효과를 실시간으로 피드백하며 다음 전술로 전환하고 있다. 이처럼 실전에서 축적되는 전술 지식은 군사 교범, 시뮬레이션, 훈련장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결정적 경험이다.
러시아군은 예비군 부대의 일부를 전선에 순환 배치하여 전투 경험을 내재화하고 있으며, 이들이 다시 후방 부대로 돌아가 실전 전술을 전파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군 전체의 전술 수준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전투학습 네트워크이자, 실전형 교육 체계다.
반면, 미국이나 나토는 이러한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 러우전과 질적으로 다른 이라크전 아프간전이라도 참전했던 병사들은 대부분 전역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장비를 공급하지만, 정작 그 무기의 전술적 유효성을 실전에서 검증하고 수정하는 피드백 루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7. 결론: 전쟁의 실체와 국제 안보 질서의 변곡점
종합적으로 볼 때, 이번 전쟁은 단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충돌이 아니라, 현대 군사 전략과 기술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전환기이다. 느리지만 결정적인 러시아의 진군, 드론 중심의 비대칭 전술, 실전 경험을 내재화하는 구조, 그리고 나토와 미국의 대응 지체는 이 전쟁이 군사적 시험장이자 국제 안보 재편의 실험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전쟁의 향방은 단순히 한 국가의 승패가 아니라, 21세기 이후의 전쟁 방식과 국제력 균형의 기준점을 결정짓는 지표가 될 것이다. 전쟁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전선은 여전히 흐르고 있으며, 어느 쪽이 새로운 전쟁 질서에 더 적응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세계의 군사 패권이 재조정될 것이다.
러우전의 재평가는 우리의 시급한 과제
특히 북한군은 소규모일지라도 실전경험을 하고 전쟁전반을 견학함으로써 현대전의 상황을 파악했으리라고 본다. 이에 따라 북한군의 현대화방향을 제대로 잡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우리의 대응도 중요해진다. 특히 그동안 서방의 내러티브에 동조한 국내의 언론과 이에 따른 각종 논문, 학술지 등에서도 러시아군이 허접한 군대인양 평가해온 것은 우리 스스로를 큰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러우전의 실상을 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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